밖에 눈이 내리고 있다.
꽤 많은 양의 눈이 내린다.
아마 밖에 나가서 걷다 보면 뽀드득 거리는 소리가 나겠지.
난 눈에 관한 추억이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내가 20년 동안 살아온 부산에서는,
눈을 구경하기가 참 어려웠으니까.
눈이 와도 겨우 쌓이다가 해가 뜨면 금방
녹아 없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 추억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기억이 나는 건 있다.
중학교 3학년, 3월 초에 수업을 듣고 있을 때,
부산에 눈이 그렇게 많이 내렸던 적이 있다.
쌓일 정도로.
(중3이 아니었을 지도)
그때 참 신기해서, 창가에 서서 한참을 눈을 바라보았더랬다.
대관령 같은 곳이야 4월에도 눈이 내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1월 한파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 부산에서
3월에 눈이 내리는 것은 그야말로 희귀한 일이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부산에서 20년 동안 본 눈보다 더 많은 눈을
지난 2년동안(사실 2년이 채 안된다) 구경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과 관련된
별다른 일을 떠올릴 수 없다.
뭐, 감성이 메말랐을 수도 있고.
그런데 그게 좀 슬프기도 하다.
2년이나 됐으면, 무언가 겨울에 관련된 일 정도는 해보고,
감상이 있으면 좋을텐데.
여름이나 겨울이나 내가 하는 일은 변하지 않으니,
무언가 다른 감상이 생길 리가 없는거다.
슬프다면, 슬픈 일이다.
하하하.
더 슬픈건,
앞으로도 만들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거다.
...정말 슬픈데?

